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 (문단 편집) == 후일담 == 당시 비행기를 납치한 6명은 줘창런 (卓長仁, 탁장인), 장훙쥔 (姜洪軍, 강홍군), 가오둥핑 (高東萍, 고동평)[* 6인방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왕옌다이 (王豔大, 왕염대), 안웨이젠 (安偉建, 안위건), 우윈페이 (吳雲飛, 오운비)로, 중화민국에서는 반공의사(反共義士)[* 이 6명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무기를 싣거나 군용기 같은 것을 타고 한국을 경유한 대만행이나 직접 대만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렇게 군용기나 무기를 가지고 귀순하는 이들을 이렇게 지칭하며 정착금 등을 주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이는 계엄령이 해제된 1991년 5월 1일까지 지속되었다.]의 귀순이라며 대대적인 환영 + 막대한 정착금을 받았고 '6의사'라고 불렸고, 줘창런과 가오둥핑은 서로 결혼까지 했다. 이후의 행보는 아래와 같다. * '''줘창런, 장훙쥔: '''대만의 환경에 적응을 못한 채 정착금을 사기당하거나 투자 등으로 탕진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반공 의사였던 스샤오링(施小寧, 시소령)[* 1985년 9월 30일에 대륙에서 무기를 배에 싣고 중화민국으로 귀순. 그도 이 살인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 타이베이 감옥에서 수감중에 있다.]과 함께 1991년 8월 16일 [[타이베이]] 병원의 한 의사의 아들을 유괴살인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2001년 8월 10일 총살형으로 집행되었다. * '''가오둥핑: '''줘창런 사형 이후 저소득층으로 전락, 2014년 8월 13일 타이베이에서 사망. * '''왕옌다이: '''정부에서 알선해준 회사에 취직하다가 퇴직 후 미국으로 가 거기에서 음식점을 차렸으나 망하고 다시 대만으로 귀국, 입법원장 량수룽 (梁肅戎, 량숙융)[* 1948년부터 1991년까지 입법위원을 맡았으며,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23905/1|1990년에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때 한국을 찾아가기도 했다]]. 2004년에 심부전으로 사망.]과 함께 법률사무소를 꾸렸다. * '''안웨이젠: '''타이베이시 체육학원의 교사로 재직. * '''우윈페이: '''대만전력공사(台電公司)에 재직. 여객기가 불시착한 활주로 지역은 [[캠프 페이지]]가 춘천시 및 대한민국에 반환, 어느 정도 재개발 되고 난 후, 2018년 춘천시 측에서 꿈 자람 관련 시설물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도 공원화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공원화 구획 안 중 불시착 지역 근처를 '중국 민항기 불시착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 있다는 듯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8407123|#]] 이 사건 이후로도 대만에서는 [[대만 계엄령|계엄령]] 해제 전까지 중국 본토에서 무기나 군용기 등을 가지고 귀순을 하면 받아줬지만, 민항기 하이재킹으로 귀순을 시도하면 체포해서 처벌한 뒤 송환시켜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